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멕시코 혁명 (문단 편집) == 마데로 정권 == 지지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마데로는 대통령직을 원활히 수행할 수 없었다. 사실 이건 혁명 시작부터 보였던 조짐으로, 너무나 다양한 세력들이 그의 밑으로 모이다 보니 생긴 결과였다. 마데로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형식에 과도하게 집착한 나머지 혁명 정부의 설립을 열망하는 혁명 세력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디아스의 사임에 따라 대통령직을 승계한 데라바라의 임시정부를 승인했을 뿐만 아니라 연방군을 인정하고 우군이었던 혁명군의 해산을 추진했다. 이는 곧 디아스 정권의 관료와 군부를 인정하는 것으로서 정치 권력의 교체를 혁명의 전부로 인식하던 이상주의자 마데로의 한계를 나타냈다. 디아스의 관료와 군대를 인정함으로써 정부 내에서 마데로의 입지는 극도로 불안정해졌고 혁명 진영 내부에서는 구 체제 인사들을 우대하고 혁명군을 소외시키는 마데로의 처사에 대한 불만이 분출되면서 결속력이 현저하게 약화되었다. 비록 디아스는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지배 연합은 여전히 정계, 관료, 군부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카우디요]], 대농장주, 관료, 군부, 교회 등 수구 세력들은 사사건건 마데로를 비판하면서 반동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마데로 대통령은 농민들 사이에선 인기가 있었지만 본질적으로는 대농장주 출신이어서 멕시코에 민주적인 제도를 도입하여 근대국가의 외형을 만드는 것에는 열심이었지만 빈부차의 해소와 토지개혁 등 농민들의 빈곤한 생활 개선에는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혁명에 참가한 농민들은 빵과 농지를 위해 싸운 것이었다. 마데로는 멕시코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였고 노조 설립도 허용하였다. 그런데 이를 통해 노동운동이 활발해지자 그를 지원했던 해외 재벌들이 타격을 입게 되었다. 지방에서는 사파타를 비롯한 농민층이 토지 개혁을 요구했으나 마데로는 농지개혁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사실 마데로 및 여러 혁명 지도자들이 대지주 출신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혁명에 참가했던 농민들은 마데로의 정책에 실망했다. 보수파도 그에 대해 환멸했는데 마데로는 디아스 같은 정치적 수완이 결여되어 있었다. 최초로 마데로와 결별한 것은 모렐로스 주에서 싸웠던 에밀리아노 사파타였다. 사파타는 1911년 11월 25일 >'강탈당한 토지, 삼림, 수리 등의 재산은 정당한 권리를 가진 마을 및 국민들이 바로 소유해야 한다' 는 '''<아얄라 계획>'''(Plan de Ayala)을 발표하여 마데로 정권에 반기를 들었다. 사파타는 <아얄라 계획>을 통해 마데로가 혁명의 적들과 야합하여 디아스 독재를 능가하는 새로운 형태의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고 비난하며 디아스 시대에 수탈된 토지를 즉각 몰수하여 촌락 공동체로 환원할 것과 혁명 반대 세력의 재산을 국유화할 것을 선언했다. 또 토지 재분배와 보상, 자율적인 자치제, 지역적 전통에 따라 공유지 혹은 소규모 사유지 수여, 농업 은행의 설립 등 19세기 후반부터 농민들이 요구해 온 사항들을 모두 망라하였으나 역대 '계획'들과는 다르게 정권 장악을 목표로 설정하지 않았다. <아얄라 계획>이 발표되자 토지 분배 공약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여러 촌락의 지도자들이 합류하여 1911년 말부터 모렐로스와 푸에블라의 요충지들을 통제하면서 사파타 운동을 확산시켰다. 마데로 정권은 연방군을 출동시켜 무자비한 소탕 작전을 벌이는 한편 유화책을 구사해 가면서 사파타 세력을 분쇄하려고 했지만 잇달아 터지는 레예스, 오로스코, 바스케스 고메스 등등의 반란에 대처하느라 사파타 운동의 진압에 군사력을 집중할 수 없었으며, 농민들은 마데로 정권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 급기야 의회에서도 토지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고 마데로는 농장주들에게 자발적인 토지 분배를 호소하기에 이르렀으나 농장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마데로 정부는 이제 진퇴양난에 빠졌고 국민들의 불만과 분노는 점차 확대되었다. 북부에서는 마데로로부터 기대에 못미치는 보상을 받은 오로스코가 마데로를 적대하기 시작했고 1912년 4월 3일 마데로가 노동조건 개혁에 반대하자 이를 계기로 '콜로라도스'(Colorados, 붉은 깃발군)를 조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반란들을 진압하기 위해 마데로는 독재자 디아스 휘하에 있었던 군대인 연방군을 동원했다. 오로스코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연방군 장군인 [[빅토리아노 우에르타]]를 보냈고 [[판초 비야]]도 종군했다. 오로스코의 반란을 진압하며 세력을 키우던 우에르타는 비야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해 말을 훔쳤다는 죄목으로 비야를 체포하여 사형을 선고했다. 비야는 겨우 미국으로 탈출했다. 게다가 디아스 휘하의 장군이었던 [[https://en.wikipedia.org/wiki/Bernardo_Reyes|베르나르도 도로테오 레예스 오가손]](Bernardo Doroteo Reyes Ogazón)과 디아스의 조카인 [[https://en.wikipedia.org/wiki/F%C3%A9lix_D%C3%ADaz_(politician)|펠릭스 디아스 프리에토]](Félix Díaz Prieto)가 베라크루스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레예스와 디아스는 군부의 명예가 마데로에 의해 실추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군부와 구체제 세력들에게 궐기에 동참할 것을 선동하였지만 그들의 반란은 베라크루스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끝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